스승은 있다 –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들어가기: ‘스승’은 정말 존재하는가?
우리는 흔히 ‘스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존경할 만한 인물, 길을 제시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스승의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스승은 있다』에서 "진정한 스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본질을 짚어낸다. 이 책은 단순한 교육 서적이 아니라, 배움과 가르침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철학적 성찰이 담긴 책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책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을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다.
1. 배움은 누가 주도하는가? – 스스로 찾는 학습의 중요성
우리는 흔히 배움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의 일방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치다 타츠루는 배움이란 누군가에게 주입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일본의 전통 무술 수련 방식을 예로 들며, ‘가르치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완벽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좋은 스승이라면 완벽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사랑' 에 스승의 역할에 대해 말하는데, 사랑이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모호함과 알 수 없음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 Jacques Lacan) 의 이론과 연결되는데 라깡은 우리는 언제나 ‘완전한 충족’을 갈망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결핍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 갈망이 완전히 채워지는 일은 없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고 하나가 되고 싶어 하지만, 사실 상대를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이 결여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의 교육 방식과도 대비된다. 현대 교육 시스템은 정답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학생들은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우치다 타츠루는 이런 방식이 진정한 배움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배움이란 본래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며, 정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학습의 주체는 스승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 자신이다. 스승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은 온전히 제자의 몫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배운다’는 행위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탐구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임을 다시금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스승은 반드시 존재하는가? – 가르침의 형태에 대한 재해석
책의 제목인 『스승은 있다』는 다소 도발적인 주장처럼 들린다. 현대 사회에서는 형식적인 ‘스승’의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도제식 교육이 사라지고,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굳이 스승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치다 타츠루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스승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그가 말하는 스승은 단순히 특정한 인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방식으로 배움을 얻는데, 때로는 책이 스승이 되기도 하고, 실패의 경험이 스승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타인의 행동에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즉, 스승이란 특정한 사람에 국한되지 않으며,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든 것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배움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한다. 특정한 인물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요소에서 배우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배울 수 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존재가 우리에게 스승이 될 수 있다.
3. 스승이 주는 가르침 – 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존재
우치다 타츠루는 ‘진정한 스승’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스승이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스승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리는 흔히 스승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에게서 정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진정한 배움은 정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무술 경험을 예로 든다. 그는 검술 수업 중 한 제자가 “어떻게 하면 이 기술을 빠르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스승이 “네가 원하는 것은 정말 속도인가?”라고 되묻는 장면을 소개한다. 이 질문을 받은 제자는 단순히 기술을 빠르게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빠른 답을 찾고 싶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좋은 스승은 정해진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이런 관점을 가진다면, 우리는 스승을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켜 주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나오기: 우리는 어떤 스승을 찾고 있는가?
『스승은 있다』는 단순한 교육론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배움과 가르침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배움이란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며, 스승이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좋은 스승이란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돕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종종 ‘좋은 스승’을 찾고 싶어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배우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스승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움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언제든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6+3+3 제도권 교육 속에서 참 스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손에 꼽는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 고등학교 3학년 윤리 샘... 그리고 최악은 고등학교 2학년 담임..스승이라고 할 만한 선생님에게는 역시 배우려고 노력을 했고, 당연히 성적관리도 되었던 거 보면 책에서 말하는 스승은 정말 있다 인거 같다. 물론 스승과 선생은 다르지만.. 90년대인 학창시절을 보낸 나의 교실에는 한 반에 50명, 60명이 있던 때라 사실 선생님이 내 이름만 불러줘도 눈에서 하트가 뿅뿅 했더랬다. 마치 김춘수 의 시 <꽃> 에 나오는 시구절처럼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그가 수많은 반친구 중에 내이름을 알고 불러주었음에 존재감을 보일 수 있었던 그 때 배우는 태도가 생겼던 게 아니었는지도..
어쨌든 스승은 있던없던 내 안에서 찾으면 되는 거 같다. 누가 되었던 내 결핍을 인정해주고,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라면 내 아들넘이라도 스승이지 않을까?! 또는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결국, 배움의 본질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책인거 같다.